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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부터 문과인의 IT창업기

불확실성을 대하는 자세

창업 직전에 제주도 한라산을 찾았습니다. 대한민국 정상에서 거칠것 없는 풍광을 보며 비전을 세우고 기운을 받아 오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당일 아침, 부슬비가 오락가락했지만 등반에는 문제가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백록담으로 두 시간쯤 올라가니 어둑해지고 강풍과 함께 비가 흩뿌려졌습니다. 점점 추워지고 미끄러웠지만 올라야할 이유가 있는 만큼 그대로 정상을 향했습니다. 성인 남성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강풍을 뚫고 오른 한라산 백록담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래도 인증샷은 남기겠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ㅜㅠ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정상에 도착할 쯤엔 날이 개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비웃듯이 빨리 하산하라는 경고방송이 찌지직 반복됐습니다. 창업의 비전을 세우고 원대한 포부를 담으러 왔는데...앞이 깜깜하고 보이는게 아무것도 없다니...창업하지 말라는 건가? ㄷㄷ 허탈하기 보다 상황이 너무 우스워서 실웃음이 나왔습니다. 4시간을 넘게 오른 정상에서 10분도 채 못있고 다시 4시간을 하산하는 것으로 야심찼던 한라산 등반은 막을 내립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할 수 없을때 불안감을 느낍니다. 상황이 통제 가능 범위 바깥에 있을 때 불확실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요. 스타트업을 하며 익숙해져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불확실성입니다.

 

정제되지 않은 한정된 정보 내에서 최악을 피하는 결정을 거의 매일 내려야 하고, 이미 내린 결론에도 확신을 갖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창업 아이템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가이드를 단계별로 척척 내놓는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 용 온라인 큐레이션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가이드와 멘토가 있다고해도 결국 선택은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것이므로 불확실성을 완전히 없앨수는 없겠죠.

 

상의할 선배와 동료가 많이 있는 직장생활에서도 문제해결'방법'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1,2인 창업일때는 오죽할까요.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을 때 세상에 혼자 남겨진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며 멘붕상태가 오곤 하죠.

 

그럴때마다 저는 한 풍경을 떠올립니다. 

 

<안개 자욱한 한려수도>

 

직장생활 중 한참 창업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고민할 시점에 통영으로 워크샵을 가게되었습니다. 마음이 복잡했던 터라 빽빽한 도심을 벗어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려수도 감상을 위한 케이블카 안에서는 안개 밖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깝깝한 제 마음이 마치 이 안개같아 답답해지려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쪽빛 바다는 온전히 그 자리에 있다."

 

 

비록 안개가 비경을 가리고 있지만 그 너머 한려수도는 그대로 입니다. 그리고 안개는 반드시 걷힐 것입니다. 이 안개가 바로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불확실성을 뜻하는 것 같았습니다. 불확실성에 의한 불안감 때문에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하고자 하는 일, 이루고 싶은 삶은 마음 속에 명확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결정들을 내려야 하지만 큰 방향이 쪽빛 바다를 향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마주하게 되겠지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머리가 한층 맑아졌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한라산 정상도 마찮가지 입니다. 악천우에 사방이 뿌옇지만 신비한 백록담과 제주의 절경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과 마주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좀 돌아가더라도, 내려갔다 다시 오르더라도 큰 방향만 산 정상이 맞다면 반드시 절경은 눈 앞에 펼쳐지게 될테니까요.

 

결국 나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하다면 불확실성을 대하는데 여유가 생깁니다. 목적지가 명확하다는건 그곳이 못갈 곳은 아니라는 얘기이고. 이번에 틀리더라도 더 정확한 지도, 더 안전하고 빠른 이동수단을 찾으면 될테니까요.

 

게다가 안개가 있기에 쪽빛 바다가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행착오 없는 성공이 있다면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성공한 것일 겁니다.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불확실함을 조금 더 편안히 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지금 하는 일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P.S> 분명히 불안함이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ㅎㄷㄷ 하다는게 함정...;;;

 

 

P.S 2> 연애나 결혼을 해서 마음의 쉼터를 만드는게 더 효과적일 수도......^^;;;